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사르의 내전 (문단 편집) === 코르피니움의 싸움 === 카이사르와 맞서기로한 아헤노바르부스는 5개 대대를 보내 코르피니움 근처에 있는 다리를 파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재빨리 병사를 보내 아헤노바르부스의 군을 격퇴한 뒤 다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 뒤 조금 있다가 카이사르와 그의 군대가 도착해 성 근처에 진을 쳤다. 카이사르의 도착을 안 아헤노바르부스는 2개 군단과 함께 아풀리아에 머물고 있던 폼페이우스에게 전령을 보내 같이 합류해 맞서길 요청하였다. 그렇게 한 뒤 도시 곳곳에 방어용 무기를 설치하였다. 이때 카이사르쪽에 붙고 싶어하는 병사들이 많았는데 아헤노바르부스는 그들에게 이기면 자신의 땅을 일인당 25에이커씩 나누어주기로 약속함으로써 일단 그들의 이탈을 막았다. 이때 코르피니움 근처에 술모(술모나)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엔 원로원파 의원들이 7개 대대를 이끌고 주둔 중에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게 5개 대대를 인수받은 안토니우스가 접근하자 술모의 시민들과 병사들은 모두 카이사르에게 붙기로 한다. 의원들은 술모에서 도망쳤고 그러다가 카이사르 휘하 군단에 생포되었으나 카이사르는 그들을 조건 없이 풀어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리아에서 새로 징집된 22개 대대(2.2군단)와 갈리아의 부족장이 보낸 기병 3천이 카이사르가 있는 곳에 도착해 합류한다. 카이사르는 이 부대를 모두 쿠리오에게 주어 독자적으로 지휘하게 한다.[* 쿠리오를 매수하기 위해 카이사르는 쿠리오가 지고 있던 어마어마한 액수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다. 당시 선거는 [[돈지랄|돈질로 승부내는 경향]]이 있었고 또한 선거 관리 위원회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돈질로 하는 승부를 불법으로 여기질 않았다. 따라서 정치가들은 선거를 치르면서 출세할 때마다 막대한 빚을 지는 것이 특징이었고 카이사르 역시 집정관 선거를 치르기 전까지 엄청난 빚에 허덕였다. 그러다 카이사르는 집정관 시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의 파라오 즉위를 돕는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받음으로써 빚을 탕감하는데 성공한다.][* 쿠리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호민관 1년 선배로 젊은 정치가 중 필두로 손꼽힐 정도로 유망한 젊은이였다. 특히 웅변술로 유명하였고 웅변의 달인 키케로도 그를 극찬할 정도였다. 단 그에겐 눈에 띄는 군사적 경험이 없었고 이는 나중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그를 몰락하게 한다.] 이것은 카이사르가 쿠리오를 상당히 신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 카이사르는 군대를 동원해 코르피니움을 에워싸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헤노바르부스는 폼페이우스의 답신을 받았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아헤노바르부스는 안절부절하며 측근들과 밀담을 나누었다. 궁금해진 병사들에 의해 곧 소문이 나 진상이 밝혀졌는데 폼페이우스는 아헤노바르부스에게 "어째서 멋대로 행동하는가. 당장 성을 버리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라"고 질책하는 답신을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이땐 [[사면초가|이미 카이사르가 성을 에워싼 뒤]]었으므로 아헤노바르부스는 달아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병사들이 성을 지키는 동안 [[뒤통수|측근들과 함께 몰래 성을 버리고 빠져나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아헤노바르부스의 병사들은 분노하여 아헤노바르부스를 카이사르에게 넘기기로 결심하였다. 이때 아헤노바르부스 휘하의 보조병으로 마르시족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병사들이 아헤노바르부스를 넘긴다고 하자 격분하면서[* 병사들이 카이사르의 군대가 접근하자 겁을 먹고 자신들의 사령관을 팔아넘겨 목숨을 부지하려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 도시의 요소처를 점거하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곧 마르시족도 진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은 만장일치로 아헤노바르부스를 사로잡아 가둔 뒤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카이사르는 소동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여 한밤중에 성을 접수한 뒤 다음날 동틀 무렵 포로로 끌려온 아헤노바르부스와 카이사르에 맞선 군 사령관, 원로원 의원들, 도시의 유력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자신이 베푼 은혜를 배신하였다고 질책한 뒤 그들을 모두 조건없이 석방하는 대인배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 뒤 아헤노바르부스가 군자금으로 쓰려고 모아놓은 그의 재산이 담긴 금고를 병사들이 가져왔다. 카이사르는 이 석방하기로 결정된 아헤노바르부스에게 이 돈을 돌려줌으로써 그가 [[대인배]]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준다. 이렇게 코르피니움을 점령한 카이사르는 아풀리아에 머물고 있던 폼페이우스와 싸우기 위해 아풀리아로 향했다. 이때 카이사르가 지나는 도시들은 모두 그에게 붙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